(15~21은 내가막넣은것) [포토세상]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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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 이야기

[포토세상]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은메달

[한국조폐공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메달

“다짐하겠습니다!
함께 온 100년, 함께 할 100년”


1919년 3 · 1 운동 직후 수립되어 우리 민족 독립운동의 핵심체로 이를 총지휘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대한민국임시정부’. 3 · 1 운동과 더불어 우리 민족사의 큰 전환점을 만들며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할 이 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메달’로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미래를 다짐하고자 합니다.

•한국조폐공사 기술력이 담긴 사각기념메달 적용
•소장용 프루프급 기념메달
•금메달 각 500장, 은메달 1,000장만 한정 제조
•3 · 1 운동 100주년 기념메달(완전 매진)에 이은
또 하나의 국가적 100주년 기념메달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대한민국임시정부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3 · 1 운동을 전후로 국내외 7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상하이를 거점으로 1919년 9월 개헌형식으로 통합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국내외에서 3 · 1 운동이 전 민족운동으로 확산될 때, 독립정신을 집약하여 우리 민족이 주권국민이라는 뜻을 밝히고, 독립운동을 능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상하이에 있던 시기(1919〜1932)에는 국내외동포사회에 조직을 확대하면서 외교활동이나 독립전쟁 등을 지도, 통할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그런데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반격으로 상하이를 떠나게 되었고, 뒤이어 일어난 중일전쟁(1937)으로 중국 각처를 옮겨 다녀야 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상하이[上海, 1919] · 항저우[杭州, 1932] · 전장[鎭江, 1935] · 창사[長沙, 1937] · 광둥[廣東, 1938] · 류저우[柳州, 1938] · 치장[綦江, 1939] · 충칭[重慶, 1940] 등지를 차례로 이동하였습니다. 1939년 치장으로 옮긴 뒤 전시체제로 정비하였고 그 뒤 곧 충칭으로 옮겨(1940〜1945)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할 성과는 광복군을 창설하여, 때마침 일어난 태평양전쟁에 임하여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군과 함께 중국 · 인도 · 버마 전선에 참전하였던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중국정부를 통로로 국제외교도 강화하여 카이로선언(1943) 이후 우리나라의 독립에 대한 열강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건국강령을 발표(1941)하고 헌법을 개정(1940 · 1944)하면서 광복 한국의 새로운 통치기반을 다져나갔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열악한 상황에서 중국 각지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한때 침체를 겪기도 했으나 27년간의 활동과 당시 세계사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점입니다.


[자료출처 풍산화동양행]


그러므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국인의 이념적 정부로 독립운동의 통합을 시도하였다는 점, 실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8 · 15광복까지 단절되지 않고 존재한 유일한 기구였다는 점, 또 국제적으로 한국인의 독립의지가 감상이 아닌 현실적인 요구라는 것을 보여준 실체로서 존재하였다는 점 등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뜻 깊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기념 메달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기념 은메달

31.1g 은메달의 앞면에는 사각 금메달 앞면 도안과 같은 디자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원년인 1919년 10월 11일에 촬영된 국무원들의 사진의 모습이 적용된 원형의 메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