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은 내가막넣은것) [포토세상] 3.1운동 100주년 기념 금메달 II (15.55g)
본문 바로가기

주화 이야기

[포토세상] 3.1운동 100주년 기념 금메달 II (15.55g)

기미년(1919년) 3월 1일 정오,
밀물같이 터진 대한독립 만세
그 뜻깊은 역사 100주년을 맞이하며...



올해 2019년은 1919년 거국적으로 행해진 3 · 1 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일제강점기 36년의 역사를 딛고 우리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3 · 1 운동과 같이 민족의 독립을 향한 치열한 의지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10년 일제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한 후 식민지 경영의 통치 기구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였고, 한국 사회를 식민지로 재편하기 위해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실시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근대적 기본권을 박탈당했고, 회사령이 실시되면서 민족 자본의 성장도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또한 1910년부터 1918년 사이에 진행된 토지 조사 사업으로 불법적인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가 인정되고 지주의 권리가 강화되어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거세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10년 대에는 국외에서의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 국내에서의 비밀결사 운동, 교육 문화 운동 및 생존권 수호 투쟁 등을 통해 운동 역량이 강화되어 갔습니다. 이와 함께 1910년대 말 국제 정세도 크게 변화되어 1918년 1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식민지 약소민족을 크게 고무하여 민족 해방 운동을 고양시켰습니다.


당시 손병희·최린 등 천도교계, 이승훈 등 기독교계, 한용운 등 불교계가 독립 선언을 계획하여 독립선언서, 파리강화회의 등에 보내는 독립청원서, 일본 정부에 보내는 독립의견서 등이 작성되었고, 2월 27일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어 종교 교단을 중심으로 미리 배포되었습니다. 그 후 고종의 장례일인 3월 1일 정오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 · 진남포 · 안주· 의주 · 선천 · 원산 등지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 해방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평화적이었지만 큰 울림의 ‘독립선언’을 한 ‘3 · 1 운동’은 세계적으로는 중국의 5 · 4운동, 인도의 비폭력 · 불복종 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3 · 1 운동’은 가슴 속 작은 불씨가 되어 우리 독립운동의 근원이 되었고, 우리의 고비 때마다 우리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한민족(韓民族)’임을 일깨워 주는 정신이었습니다.

100년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 3 · 1 운동 100주년 기념메달로 이를 다시 기억하고자 합니다.


[자료출처 풍산화동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