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 정확한 연도도 생각나지 않는다. 1939년생인 고영준은 국민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았고 중학교 1학년 때 6·25를 당했으며 대학교 4학년 때 4·19를 겪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직장생활 열심히 하며 살았다. 어느 날 전남 장흥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가니 장흥 고씨 문중 어른이 와글와글 앉아 있었다. "자네, 어차피 결혼하면 집을 떠날 터이니 조금 일찍 떠나시게." 손이 끊어진 친척집 녹천 고광순 문중 종손으로 입적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영준은 1963년부터 전남 담양 창평마을에 산다. 문중 어르신이 "이건 이제 자네가 간직하라"며 준 증조부 고광순 유품 태극기 한 장에 의지해 지금껏 산다. 태극기 이름은 '불원복(不遠復) 태극기'다. 그가 말했다. "내가 부잣집 막내아들인데, 그때 싫다고 했으면 내 맘대로 즐기고 살았을 터인데, 지금 이리 산다." 태극기는커녕 녹천 고광순이 누군지 몰랐던 고영준이다. 이제 그 고영준이 '지금 이리' 살기까지 장장 400년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자료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4/20190814003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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