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은 내가막넣은것) [포토세상]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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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포토세상]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평소 건강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게 살아왔었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축구 야구 족구 탁구 등 공으로 하는 운동은 아마추어 선수를 할 정도의 강철 남으로 통할 정도였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고 믿어지지 않는 - 간암은 중기 이상이고, 간경화도 많이 진행 - 결과를 통보받았다. 의사선생님은 당장 대학병원급 이상의 병원으로 가서 재진료와 치료를 받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난 그 자리에 멍하게 서서 창밖을 쳐다볼 뿐 머리에 특별히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려운 절차를 거처 서울대학병원암센터에서 재진을 받았지만 결과는 동일하였다. 급하게 잡힌 스케줄에 따라 입원과 수술을 받게 되었다. 간암중기와 전이암 그리고 간경화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현실에 세상이 원망스럽고 의사들이 싫어졌다. 개인적으로 동네 의원급 병원에서 년 2회의 정기검사와 직장에서 매년 의료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정기건강검진에서 한 번도 건강에 이상 소견이 발견된 적이 없으며, 평소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내가 암환자라니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는 공직자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고, 사회에서 교회 집사로서 남에게 봉사하며 착하고 법대로 아주 모범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왜 내게 이런 병이 온단 말인가? 병원검진결과를 내자와 같이 설명을 듣고 늦은 오후 무작정 시외로 달려 경북 청도의 가을 황금들판, 평소에는 카메라가방을 울러 메고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과 황금들녁을 배경삼아 앵글에 담던 그곳이지만, 지금은 하염없이 먼 들판을 바라보며 너무 슬프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들녘에 아무 말 없이 내자와 나란히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과 분주하게 벼 이삭을 주어먹는 참새 떼들의 움직임과 소곤거림이 나에겐 아무 의미 없이 들릴 뿐 이였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감사와 기도로 생활한 나에게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옆에 아무 말 없이 망부석처럼 앉아있는 내자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두 눈에 눈물만 흘릴 뿐 몇 시간째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먼 하늘 두둥실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무슨 회상에 젖은 비련의 여인 같았다. 이럴 때 서로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해는 어느 덧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들녘의 농부들은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는데, 우린 아직 아무 말 한마디 없이 몇 시간째 석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주위가 어두워져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시간에 옆에 앉은 내자의 손을 조용히 잡고 일어셨다. 지금 이시간은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 같았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 분위기에 살며시 내자의 두 손을 잡고 내 삶의 주인이신 주님께 조용히 기도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때까지 지켜주신 분도 주님이신데 앞으로 남은 시간도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 생각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이젠 남은 시간 주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남은 시간 우리 부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변함없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 암 덩어리는 누구의 탓이나 원망의 덩어리가 아니라 나의 것이라는 소박한 마음을 갖게 해 주시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떼어버릴 수 없다면 함께 조용히 살게 해 주십시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서 서로 사랑하고 가족들이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잠시나마 세상을 원망하고 모든 것이 싫어진 것을 반성하며 참되고 복되게, 이때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하늘나라로 가야합니다. 지금 간다고 해서 예상보다 조금 빨리 간다는 의미 외에는 뭐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우리부부 더욱 사랑하며 늘 웃음 잃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주님 함께 해 주실 것을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합니다. 아멘내자는 소리 없이 어께만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나의기도 또한 울부짖음 이였다. “자기야, 가자. 남은 시간 열심히 살면 되잖아. 내일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우리 갑자기 왜 이러지. 우리 정말 정직하고 바르게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잉꼬부부로 살았잖아. 누구 원망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시간에 만족하며 살자. 애들 집에서 기다리겠다.”

 

조용히 청도 황금들녘을 뒤로하고 소리 한 번 크게 내고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 아들에게 자초지정을 이야기하고 남은 기간 더욱 열심히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자. 암 걸렸다고 위축되거나 실망하지 말고 평소대로 살아가자.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서 암은 보통 병이고 감기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하지 않니, 너희들도 평소처럼 엄마 아빠를 대해주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더욱 열심히 살아가자.

 

바쁜 와중에 직장에 장기병가를 내고 어려운 수속절차를 밟아서 서울대학교 암병원에서 간암수술을 했다. 결과는 최악 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수술 후 둘째 날 새벽에 병실에서 죽는다고 아우성치고 담당교수와 주치의 당직의사 모두 새벽 3시경에 비상 소집되어 내린 결론이 수술이 잘못되어 세균이 침투해 장기가 썩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난 10여일 만에 간에 있던 모든 암 덩어리를 없애버리는 기적을 맛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서울대암센터 연구간호사를 통해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이런 상태의 간암환자가 한 번에 없어지는 경우는 아마 처음이라는 설명을 듣고 교수님들의 정성어린 수술과 치료 그리고 주님의 놀라운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놀라우며, 앞으로 부족하지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병원에서 퇴원해 대구 집으로 내려왔다. 내 생활에는 뭐 별 변동이 없는데도 난 암환자가 되어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만 긴 겨울을 나야만 하는 중환자가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답답했다. 암환자로 변함없는 하루의 일과가 몇 달이 지나니 지겹고 미칠 지경 이였다. 직장에서는 늘 장기간 한 번 쉬는 것이 꿈 이였지만, 현실이 되고 보니 건강하게 바쁘게 일하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 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바닥 구둘 짝을 지고 사는 날의 연속으로 힘들어 할 때 직장 동료들이 찾아왔다. 솔직히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못 오게 하였지만 직장신우회 회장인 나를 위해 몇몇이 대표로 찾아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나를 충격에 휩 사이게 하는 일을 알게 되었다.

 

직장신우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추운 엄동설한에 직장신우회 모든 회원과 부인들이 겨울 냇가 얼음을 깨고 간에 좋다는 다슬기를 온 종일 잡았다는 것이다. 그 양이 엄청 많은 것에도 놀랐지만 한 영혼을 위해서 추운겨울 냇가에서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손으로 한 마리 두 마리 다슬기를 종일 잡았다는 말에 난 그만 울고 말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정말 돈 몇 만 원을 주면 상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 다슬기가 간에 최고라는 신념으로 잡았을 동료들이 넘 고맙고 감사했다.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를 도우며 늘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이렇게 가슴으로 잡은 다슬기를 받고 보니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동료들이 가고 다음날 새벽에 내자가 일찍 일어나 그 귀한 다슬기 탕을 끊여서 식탁에 준비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또 울보가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 너무 귀한 선물이라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다슬기 탕이며 앞으로 다시 태어나도 먹어 보기 힘든 맛있는 음식일 것이다. 이제 수술경과 5년을 넘기면서 위급한 시기는 넘긴 것 같으며, 그 신우회원들의 아름답고 사랑스런 정성 덕분인지 지금은 건강하게 직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직도 주위에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고 나락의 길로 가는 동료직원을 보면서 정말 안타깝고 안쓰러워 그분들에게 나의 조그마한 병상일지를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몇 개월 만에 우리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암이라는 것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의학적으로 우리 몸에 하루에 수 백 개의 암세포가 생기며, 대부분 백혈구가 공격해서 잡아먹기 때문에 암으로 진행되지 않고 그저 사라지는 병 일 뿐이며, 내가 뭐가 잘못 되어서 암이 걸리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에 걸리는 것보다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를 잘 하면 현대 의학으로 충분히 극복하고, 평균수명 이상으로 살아 갈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 암에 결려 투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옛말에 골골 팔십이라는 말도 있듯이 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잘 받고, 의사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관리만 잘 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암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도 모든 것이 나의 의지로 암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사랑 그리고 기도, 그 외 주위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합하여 오늘 이 시간까지 건강하게 극복하고 직장생활하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의 암 극복기를 쓸 수 있어서 행복한 사람이라 감히 자평하고 싶다.

 

어떤 상황이 최악일지라도 반드시 한 줄기 빛이 있을 수 있기에, 어렵고 힘든 현실을 도피하기 보다는 과감히 받아들이고 함께 방법을 찾아보면 지혜로운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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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랑과 정성으로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이다. , 암 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