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은 내가막넣은것) [포토세상] 광해군부터 고종까지… 조선왕실 탑본 300년 역사를 만난다
본문 바로가기

골동 & 민속

[포토세상] 광해군부터 고종까지… 조선왕실 탑본 300년 역사를 만난다

‘조선왕실의 비석과 지석 탑본’ 특별전


태종대왕 헌릉 신도비 뒷면 탑본. 숙종 때인 1695년 제작한 것으로 

상단 ‘태종헌릉지비(太宗獻陵之碑)’라는 제액(題額) 아래 공신 명단 등을 기록했다. 

가로 약 1.5m, 세로 약 4m다(왼쪽 사진). 태조 이성계가 독서를 하던 곳에 

정조가 1797년 글을 짓고 글씨를 써서 세운 독서당 구기(讀書堂 舊基)비 탑본. 

효종대왕 영릉(寧陵) 청화백자 지석 시제품. 조선 현종 때인 1673년 영릉을 옮기면서 

시험 삼아 백자로 구운 3점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배경의 옥색 비단과 어울린 먹빛이 장중하다. 당대 손꼽히는 문장가가 글을 짓고, 명필이 글씨를 썼으며,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돌에 새기고 먹을 바른 뒤 비단으로 표구한 조선 왕실 탑본(탑本·석비와 목판을 먹으로 찍어내거나 글씨를 베껴 쓴 것)들의 모습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8일부터 12월 21일까지 경기 성남시 연구원 장서각에서 조선 왕실문화의 정수 가운데 하나인 ‘조선왕실의 비석과 지석(誌石) 탑본’ 특별전을 개최한다. 전시품은 조선 광해군 대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약 300년 동안 제작된 왕실 탑본 556점 가운데 아름답고 중요한 45점을 고른 것이다. 봉모당(奉謨堂·1776년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의 시설)에 봉안됐다가 연구원이 소장 중인 이들 탑본 실물이 대거 관객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왕릉의 비석과 지석은 제작 당시 왕실 주도로 탑본을 만들어 보관했기에 탑본을 통해 원형을 알 수 있다. 왕릉을 만들 때는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비석을 세우고 망자의 생애를 기록한 지석을 땅에 묻는다. 지석은 발굴하지 않는 이상 볼 수 없고, 비석도 시간이 흐르면서 마모된다. 

전시품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태종 헌릉 신도비(神道碑) 뒷면 탑본으로 가로 약 1.5m, 세로 약 4m다. 1424년 세운 신도비를 기초로 숙종 때인 1695년 다시 새긴 비석을 탑본한 것이다. 비문의 앞면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공덕, 자손에 관한 글이 담겼고, 뒷면에는 건립 내역을 비롯해 개국공신 등 여러 공신의 명단을 기록했다.

[자료출처 동아일보 원문보기]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1008/977759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