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은 내가막넣은것) [포토세상] 한국미 널리 알린 이야기꾼 미술사학자 최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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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야기

[포토세상] 한국미 널리 알린 이야기꾼 미술사학자 최순우

1960년대 제주 풍물시장에서 구한 호랑이 그림 꽃방망이(왼쪽)와 

추상무늬가 아름다운 분청사기 모란 무늬 편병. [사진 제공 ·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성북동집 사랑방에 앉아 있는 최순우 선생의 생전 모습. [사진 제공 · 혜곡 최순우기념관]


올해는 최순우(1916~84)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평생 박물관과 함께 살면서 한국의 미를 진솔하게 이야기한 사람이 최순우다. 그는 이야기꾼이었다. 한옥과 사랑방의 정갈한 목가구나 앞뒤뜰의 자생 꽃, 나무의 아름다움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재생됐다. 그가 신문과 잡지에 쓴 수많은 글은 우리 삶에서 스쳐가는 소재였다. 그림과 도자기, 건축과 목가구, 옷과 음식, 벽돌과 기와, 탈과 금관 등 갖가지 유산이 되살아났다.  


4월 27일 100세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최순우의 서울 성북동 옛집에서 열렸다. 6월 4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순우 선생의 생애와 학문세계’를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 주최로 열렸다. 강연회와 전시회도 이어졌다. 조촐히 살다간 문화인을 한 세대가 지나도 기억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최순우 이전에 한국의 미, 한국의 마음을 글과 말로 대중에게 널리 심은 사람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애주가, 애연가, 미식가이며 검은색 무지양말과 줄무늬 코르덴바지를 멋스럽게 입었던 문학 지망생 최순우가 일제강점기, 해방기, 6·25전쟁 등 격동기에 박물관이라는 한 우물만 팠던 생애와, 하숙을 치며 남편을 뒷바라지한 개성 출신 부인 박금섬 여사의 내조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지녔다”고 인식을 같이한다. 


[자료출처 주간동아 원문보기]
https://weekly.donga.com/3/all/11/536976/1